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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 이론 3편

by 코끼코 2024. 7. 20.

우리는 공부 못하는 내가, 공부 잘하는 나로 옮겨가는 것, 그걸 수행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 보세요: 법념처, 개도 있는 그대로 볼뿐, 각지도 믿는 그대로 볼뿐 어떤 것도 쥐지 않을 않는다는 거죠. 그게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에요, 그냥 즉 오기도 마찬가지고. 칠지도 마찬가지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냥 일어나고 사라질 뿐 일어남, 사라짐. 그래서 이 위바 사나에서 그러잖아요, 방편으로 처음에는 이름을 붙인다 그래요.

 

삶의 가벼움과 깨달음

근데 이름 붙일 때 일어남 사라짐,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여요, 호흡을 이렇게 숨을 들실 때, 아랫배가 이렇게 부풀지않아, 그걸 가지고 그냥 일어남 사라지요, 요것만 한단 말이야, 그냥 뭐가 이렇게 일어나는 거 같으니까 일어남 사라지,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내가 화가 났다, 그럼 화가 났어, 이렇게 해석하지 않고, 뭔가 이 뜨거운, 뭔가 막 분노가, 뭔가가 이렇게 일어났지만, 그걸 화라고 이름 붙이기보다 그냥 일어남, 또 통찰하다, 보니까 사라졌단 말이야 사라짐, 이게 무상을 본다는 걸 뜻해요.

 

근데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처음에는 어려워 하니까 그냥 일어남 사라짐, 이라고 이름을 임시로 붙이는 거죠, 온갖 생각이 일어날 때 그냥 일어남 사라짐 분노가 일어날 때도 마찬가지. 그니까 즉 이렇게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사라지고, 그뿐 거기서 한 발 나아가 가지고: 내가 이런 걸 얻었어, 저런 걸 얻었어, 이런 것들이 나에게 경계로 찾아왔어. 이렇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건 일체 계고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근데 이렇게 그냥 일어날뿐 사라질 뿐, 이렇게 무상하게 변해갈 뿐이라는 걸, 있는 것들을 통찰하게 되면, 내 마음이 이랬어하고, 이렇게 붙잡지 않는단 말이야, 나가 개입되지 않는단 말이죠. 그것뿐이지이 소리가 이렇게 일어날 때. 일어날 때 생각하지 않으면, 분별하지 않으면 분별하면서, 이 절에서 스님이 종을 치고, 내가 저 앞에 앉아 있는, 내가 종소리를 듣는다, 이게 분별한 거잖아요. 분별하면, 그렇게 되잖아요.

 

근데 실제 실제 진실을 보란 말이야, 법을 보란 말이야 법을, 진짜 자기 분별을 보지 말고. 진짜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뭐지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갓난 아기가 된 것처럼, 나는 이름도 모르고, 개념도 모르고, 언어라는 건 일도 모르는 사람처럼, 막 가난하게 돼. 지금, 막 태어난 사람처럼, 이게 종소리 인지 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냥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이건 뭡니까 그냥 이거 하나 아니에요.

 

내가 저 소리를 듣는다, 이런 생각이 없어요, 그냥이 알아차림 뿐이잖아요. 그니까 이걸 어쩔 수 없이 알아차림, 이런 거예요 그냥 앎 이잖아요, 그냥 들릴 뿐 부처님께서들을 때는 듣는 것만 있게 해라들을 뿐, 볼 때는 볼뿐, 그럴 때, 그럴 떼이 나와 세계가 사라진다, 이런 식의 말을 해요.

 

거기 나와 세계가 따로 나뉘지 않아요. 이 모든 것이 없다, 그런 이쁜이란 말이야, 그냥 이쁜 둘로 나뉘지 않아요 하나예요, 하나 이게 그냥 하나로 이거 이제 어 하가 보지, 이렇게 스님이 얘기하니까 그런 갑지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가만히. 그래서 우리가 명상을 배우는 것도, 그런 거 아니겠어요. 한 생각들, 내가 갓난아기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다, 아무것도 일도 모른다, 그리고 그냥 있어 보면, 뭔지 이름은 모르겠는데, 어떤 우리가 몸이라고 이름 붙인 어떤 감각들이 이렇게 느껴 지죠.

 

열기도 느껴지고, 간지러움도 느껴지고, 어떤 소리도 들리고, 열기도 느껴지고. 나 또 춥다는 것도 느껴지고, 근데 춥다 덥다고, 이름은 붙일 수 없지만 어떤게 느껴질 뿐이죠이 불이법 이거든요.

 

열반적정 확인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일제 계고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가 뭔가를 하게 해서 괴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열반 적정을 확인한다 말이죠. 그럼 여기서 말하는 열반적정이 뭐예요, 어마어마한 열반이라는 어떤 대사건이 내가 아까까진 부처 중생이, 지금 열반적정을 얻은 부처가 됐어,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그런 가짜죠.

 

그거는 내가 부처가 될 수가 있을까요, 내가 있는 동안 어떻게 부처가 돼요, 내가 부처 된, 내가 있다면, 그게 어떻게 진짜 부처 있어요, 부처라는 상을 하나 쥐고 있는 거지, 진짜 부처에는 부처가 없단 말이죠, 이렇게 좋은 경계가 일어나든, 좋지 않은 경계가 일어나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통찰할 뿐이죠.

 

그래서 이제 그다음에 이렇게 오계와 칠 각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볼 뿐이에요, 그러듯이 이제 오온을, 오온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래요, 그래서 우리 대년 초경에 보면, 이렇게 말해요: 비구는 취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 어떻게 비구가 취하는 다섯 가지 무기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는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은 물에 일어남이, 이것은 물의 사라짐이, 또 이것은 느낌이다, 이것은 느낌의 어이다, 이것은 느낌의 사라짐이. 생각 의지, 의식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이것은 의식이다, 이것은 의식에 일어납니다, 이것은 의식에 사라집니다. 이렇게 관찰하면 몸은, 이처럼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움켜지고 있거든요, 내가 어떤 느낌이 일어나든, 생각이 일어나든, 의지가 일어나든 분별, 의식이 일어나든, 그저 일어남 사라짐, 어떤 하나가 일어남이 감지되고, 사라짐이 감지된 거예요.

 

그 느낌이 됐든, 생각이 됐든 일어남 사라짐, 그걸 일어남으로 보고, 사라짐으로 보는 거예요 분별한 어떤 이건 느낌이야, 이건 좋은 느낌이야, 좋은 느낌을 일으켰으니. 나는 좋은 사람이야, 나는 나쁜 느낌이 많일어나니까, 나는 나쁜 사람이야. 이런 생각을 하면 그건 분별 이건 느낌이고, 이건 생각이야. 나는 감성적인 사람인가 봐, 나는 좀 이지적인 사람 인가 뭐, 이거 그 분별없이, 그냥 그냥 일어남, 사라짐으로 보는 것을,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그래요.

 

그 개념을 따라가지 않고, 분별을 따라가지 않고, 그냥 보는 거죠, 그냥 법, 모든 것이, 전부 다 법이란 말이야, 이름 붙이기 이전에, 그냥 있는 그대로라는 거거든요, 그냥 그걸 볼 뿐이란 말이에요. 이 법을 관찰하는, 알아차리 뿐이란 말이죠.

 

마음과 몸 연결

그렇게 되었을 때 이걸 내 걸로 쥐지 않는단 말이에요. 우울함이 일어나면, 아 우울해 죽겠다. 난 요즘 왜 이렇게 우울하지? 나 우울증 걸렸나 봐, 내가 미쳤나 봐, 막 이러면서, 그 우울증에 막 하나씩 사로잡히지아요. 그런데  진실은, 우울함이 아고, 내가 이름 붙이기 이전에 어떤, 어떤 것을 알아차릴 뿐이죠.

 

근데 그걸 내가 우울함이 이름 붙였을 뿐이지, 어떤 것이 이렇게 알아었을 뿐이잖아요, 그렇게 보는 것을, 오늘 관한 법념처, 온이라는 법을 관하는 거거든요. 어떤 느낌이 일어났을 때, 내가 외로워라고 하는 것은, 법에서 법을 보는 게 아니죠, 분별에서 분별을 보는 거죠, 근데 어떤 느낌 일어날 때, 그냥 일어남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나를 개입시키지 않는 거예요. 나는 왜 자꾸 이런 느낌 일어나는 거야, 자꾸 왜 이런 나쁜 생각을 하는 거야? 이렇게 나를 개입시키지 않고 무아, 그냥 일어남을 관하는 거예요, 무상하게 일어나는 것을 없다가, 이렇게 일어난 것을 관하고, 이렇게 또 그것이 관하 되면 저절로 사라진단 말이에요.

 

또 사라짐을 관하고, 그러니까 일어나 사라짐 뿐이란 말이에요. 일어남을 통찰하고, 사라짐을 통찰하는, 그 무상하게 변해가는 과정에서, 늘 알아차린, 그 뿐이란 말이에요.

 

해석이 없어요, 개념이 없어요, 이름이 없어요, 무엇이든 동일하게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자리잖아요, 내 거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오온을 관한라는 건, 난 이런 마음이야 이렇게 관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보는 거예요, 난 이런 생각이, 야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실제가 여러분, 나는 이런 느낌을 느낀 것 같잖아요. 아니에요 이것과 똑같은 일이, 여기서도 멀어지잖아 이 이런 소리가, 이렇게 인연을 이렇게 화합하면, 이렇게 소리가 나잖아요, 소리를 듣죠, 여기서도 이렇게 인연을 화합해 주니까 이 소리가 나잖아요, 혓바닥을 하면 또 이런 소리가 나듯이 하나의 자연이란 말이에요.

 

그냥 이게 내가 아니란 말이에요. 여기서 일어나는게, 내가 일으키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이거 대상이죠 왜 내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이렇게 알아차려지잖아요. 그니까 이건 보이는 거지 보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그 눈이 손을 보잖아요, 이렇게 얘기를 하겠지만이 눈이 보는게 맞나요? 눈이 보는 거 라면 우리가 지금 생명이 딱 끊어져도, 눈이 있으면 봐야 되는데 못 보잖아요, 또 눈을 이렇게 뜨고 있지만. 내가 아무리 앞에서 이렇게 이렇게 해도, 딴생각 깊이하고 있으면, 눈에는 분명히 보였을 건, 데 못 본단 말이에요.

 

그럼 눈이 보는게. 아니라 사실은 마음이 보는 거거든요. 이 마음이라고 우리 이름 붙인 목, 모양도 크게도 할 수 없는, 어디 있는지, 위치도 알 수 없는이 하나의 마음이 본단 말이에요. 실제로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개입 따라서, 애라는 사람이 막 서글퍼 눈물을 흘리면, 그는 고소하다, 이럴 수도 있어요, 어쩌면 면 어떤 사람에게는.

 

예를 들어 내 아이가 눈물을 흘리면, 차라리 내가 오는게 낫지 너무 가슴이 그 아이보다 내가 더 가슴 아플 수 있죠, 그죠 그러면 똑같은 존재인데, 똑같은 존재인데이 대상에는 꽃이다 이러고 이 대상에는 내가 마음이 공명한다 말이에요, 그럼 저 사람 마음이 아픈 건데, 왱이 마음도 아프죠, 아픈 마음, 그냥 그 아픈 마음뿐인 거예요.

 

그게 내게 아닌 거예요, 내가 줄 수 있는 뭔가가 아니란 말이죠, 그냥 드러나고 사라질 뿐인 거예요. 인연 따라. 그러니까 인연이 이 사람과 연에서는 그 마음이 드러나고 사라져요. 이 사람과 인연에서 다른 마음이 또 드러나고 사라져요, 정해진 어떤 실체 이런게 아니에요, 그냥 오고 가는 허망한 마음일 뿐이란 말이죠.

 

그래서 오는 몸과 마음, 마음에서는 느낌 생각 의지 의식, 그게 일어날 때 우리는 사실 그러잖아요: 이렇게 몸을 관찰하세요, 눈을 관찰하세요, 호흡을 관찰하세요, 호흡이 들어오는 걸 느끼세요 관찰하세요, 호흡이 나가는 걸 관찰해서 이러잖아요, 이거 다 방편이, 그렇게 하는 건 진짜 공부가 아니죠.

 

어떻게 호흡이 그리고 호흡이 들어온다는 것도. 분별이 이게 어떻게 더러움이 이걸이 몸을 나라고 했을 때만 이 몸을 기준으로 이렇게 들어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뱉으면. 이건 바뀌라고 생각하는 분별이 아아, 실제 일어나는 건, 호흡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가는 게 아니라. 실제 일어나는 건 그냥 알아차린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