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이란 눈부시게 놀라운 감동이고 감사함이 너무나 큰 축복이고 이거는 그 기적과도 같은 일이죠 내가 지금까지 평생 살면서 밥을 한 번도 죽을 만큼 못 먹어 본 적은 없잖아요 히말라야를 가도 그곳에서 돈 얼마 주면 밥을 준단 말이에요 물이 필요하면 물을 준단 말이에요.
부정적인 시선의 문제점
전국 어디 가든 전 세계 어디를 가든 필요한 거를 다 여기저기서 구조해 져요 그곳에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근데 제가 미국 히말라야 여행했는데 히말라야에서 로지에 가서 밥을 함께 먹었다 나는 그냥 별생각 없이 밥 먹고 나오겠지만 나에게 그 밥을 주기 위해서 그 로지는 이미 몇십 년 전부터 누군가가 대대로 이어오면서 가압을 이어오면서 거기에서 짓고 요리를 연 하고 연습하고 준비했다가 나에게 이 쌍 값으로 주고 있는 일들이 거기서만 일어나겠네 말이에요.
우리의 전생에 걸쳐서 일체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 가는 곳마다 다 우리를 위해 돕고 있잖아요 너무 쌍 갑세 돼지고기 소고기를 한 번씩 먹고 싶어 먹는다 통닭을 한 마리 시켜 먹는다 너무 쌍갑 이렇게 한 마디 시켜 먹겠지만 개 입장에서 통닭 입장에서는 자기 온몸을 받이 온몸을 받이 어서 우리 한 끼 그것도 저녁 먹고 나서 저녁때 TV 보다가 먹고 싶어서 간식으로 먹는단 말이야요 굳이 안 먹어도 되는 것까지도 그러면서 먹고 나서 그렇게 산 생명을 죽여서 먹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먹 먹으면 되는데 감사하게 먹지도 않죠 먹고 나서 이 집이 맛이 없고 하면서 다 먹고 나서 아이씨 또 살쪘네 괜히 먹었다 이런 마음을 가진단 말이죠.
사실은 하나하나가 물 한 모음 먹는게 밥 한께 먹는 게 놀라운 기적이죠 기적 신비한 신이 있다면 우리 같은 이런 삶을 살지 않을까요.
미국에 너무 티켓 하나만 사면 미국에 나를 데려다 줘요 갑자기 지구 반대편에 그리고 곳곳에 어딜 가든 아무 데나 문만 열고 돌아가면 밥을 줘요 이거 신보다 더 나은 사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의 삶이 지금까지 내 그렇게 되어 왔단 말이에요 신들의 정원에서 우리는 놀라운 축복을 받으면서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 놀라운 축복과 기적 같은 만족스러운 삶을 그렇게 살지 않고 우리는이 기적 같은 을 먹 면 밥을 먹으면서이 놀라운 일인데 생각은 와 저 옆집에 저 비싼 레스토랑을 가고 싶었는데 나는 돈이 없어서 우리 부모님이 돈을 못 벌어 와서 남편이 돈을 못 벌어 와서 요거밖에 못 먹는구나 평생 내가 이렇게 집에서 통닭 시켜 먹는 거밖에 평생 못하는구나 남들처럼 막 막 아주 비싼 집에 가서 사 먹고 나도 그고 알고 싶은데 그런 망상을 진짜라고 믿는 순간 거기는 지옥이 돼 버리죠.
놀라운 축복 속의 신들의 정원이 허망한 괴로운 세계가 갑자기 연기해 버리는 거예요 자기 마음속에서 자기가 그런 마음을 냈기 때문에 마음에서 연기한다 말이죠 그런 현실이 연기하는 거예요.
그럼 자기는 그런 현실을 실제 삶이고 실제 세상이라고 믿어 버려요 그래서 그 사람의 우주는 이게 만법 유식이 해서 만법이 이 세상 전체가 내 마음속에서는 지옥 같은 삶으로 연기돼 버려요.
삶 전체가 다 자기가 부정적인 관념을 가지고 세상을 해석할 거 아니에요 그럼 덧칠된 세상 아주 오염된 것처럼 부정적으로 덧칠된 세상 속에서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평생을 그러고 살 겁니다 그러면 진실은 아까 말한 것처럼 그 있는 그대로예요
있는 그대로에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러할 뿐이에요 삶을 분별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은 자기 생각을 믿지 말고 진리를 믿더라 말이죠 생각을 따르지 말고 진리를 따르라는 것이죠.
어떤 것이 진리를 따르는 것이냐 삶이 진리예요 왜 삶은 어떤 게 삶이에요 인연이 인연이 피어나는 곳이 삶이 아아 연기법으로 법이 드러난 게 삶의 모습이에요 그니까이 몸이 내가 아니고이 삶 전체가 자기란 말이에요 이게 법신 부처님의 몸이란
말이에요.
윤회와 분별
그러니까 저마다 모든 사람은 완벽하게 자기가 살아야 할 완벽한 삶을 구현받고 있어요 구현되고 있고 예를 들어 여러분이 스님 그런데 그러면 전 너무 억울한데 남들보다 저는 못 살고 외모도 별로고 능력도 없고 내 인생 구질구질했는데요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그래서 불교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쉽게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연 윤회를 얘기하죠.
예를 들어 우리는 이제 균형 잡힌 삶을 산단 말이에요 한번 잘났으면 한번 못났고 전생에 김태희로 태어나면 이번 생에 나로 태어나는 거예요 또 전생에 가난하게 태어나면 이번 생에 많게 태어날 수도 있고 이게 이제 교차할 수 있죠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 가이 물이라는 것이 이렇게 제 몸에 들어가요.
그럼이 물은 스님으로 환생했을 때 오줌을 싸면 갑자기 오물이 대서 오줌으로 한생을 했다가 저 지하수로 내려가든 땅으로 스며들던지 했다가 땅에 있는 물이 되었다가 또 나무에 올라가서 수액이 되었다가 또 광합성으로 해서 하늘로 올라가서 수기가 되었다가 구름이 되었다가 비나 우박으로 떨어졌다가 호수의 물이 되었다가 계속 돌고 단 말이죠 그럴 뿐인 거죠.
그냥 그럴 뿐이지 어 어떤 모습을 뜬다고 해서 더 좋거나 어떤 모습을 뛴다고 해서 더 나쁘거나 이런 게 아니죠 자연스러운 이치죠 순환의 이치죠 연기법의 치요 자연스럽게이 지구별이 고통을 받는 걸 통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고가 먼저 있어야 돼요 그 괴로움을 직시해야 돼요.
먼저 그게 고성제 그든 그 괴로움은 나를 죽이려고 찾아온 게 아니라 성스러운 진리로서 찾아온 거예요 그 고성제 직면했을 때 비로소 괴로움의 원인을 탐구하게 되고 그걸 소멸하게 되고 그래서 열반 해탈하게 된단 말이죠 그래서 이 괴로움의 소멸 열반 해탈 우리가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괴로움은 필수적인 거예요.
그런데 자자는 괴로움이 있으면 여러분 승승장구하면서 짜자 괴로움만 있는 사람은 마음 공부하세요면 안 해요 오히려 욕하죠 욕 많이 하죠 종교 믿는 저 나약한 놈들 종교나 믿어 쌓는 저 종교 세상에 다 쓸모없는 것들이고 진짜 나약한 사람이나 종교를 믿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죽어도 종교 안 믿고 종교 믿는 사람 욕하거나 근데 그런 사람이 너무 간단한 사건이 일어나면은 바로 종교에 미쳐버려요.
너무 간단하더라도 막 그래도 좋게 좀 봐주세요 이런 말 할 필요가 없어요 내버려두면 돼요 어떨 때 본인에게 큰 괴로움이 생겼을 때 괴로워서 죽고 싶은 정도로 괴로움이 생기니까 너무 간단하게이 공부에 확 빠져버리고 공부를 하더란 말이죠 왜 그럴까요 괴로움이 있어야만 괴로움에서 벗어나겠다는 간절한 말씀이 생겨요 그러니까 괴로움은 축복인 거예요.
축복의 또 다른 이름이 괴로움인 거예요 우리를 깨어나게 하고 지혜를 깨어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 같은 거죠 그러니 그 깨어남을 위한 어떤 삶의 스케 삶의 학교 이 게이 지구별이 인간계 아면 모든 것이 아름답지 않나요 모든 것이 완전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점점 더 분별은 이제 옅어지고 분별의 세계 지금까지 살아왔던 분별의 세계는 점점 더 가벼워지고 점점 더이 법의 세계는 더 견고해진다 말이죠 더 확고해지고 법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이게 바로 정진 있니다 정진 정정진 바른 정진이 내가 끝끝내이 공부야 말로 가장 제가 이렇게 막이 공부를 끝끝내 정진하겠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된다.
인생에서 제일 중차대한 문제잖아요 가장 내 인생에 제일 중요한 1번을 꼽으라면 이거이 공부예요 내 인생에 제일 중요한 게 내가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건강하는 것도 아니고 자식 잘되는 것도 아니고이 공부하는 거라니까요.
왱이 공부가 하면 다 끝나 버리니까 아 내가 본래 해탈에 있구나 내 자식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구나 내 남편이 내가 죽을 수가 없구나 내가 늙고 병들고 죽을 수가 없구나 왜 늙고 병들고 죽은 이 외모 겉모습 이게 내가 아니라 삶이라는 법신 불이 그대로 자기라는 거라니까 딸랑딸랑하는 이게 자기고 저렇게 피어 있는 등 등불들이 다 자기고이 산하대지 현진 광이라고 하듯이 나대지가 그대로 이 법이라는 빛이 드러난 진리의 세계인 줄을 깨닫는다는 거죠.
그러니이 진리의 언덕에서 아름답게 삶을 누리며 사는 거 어 그밖에 할 게 없구나이 사실에 깨어나게 된다면 어떨까요 삶이 어떻게 바뀔까요 얼마나 가벼워지겠지 할 일이 없어요 무엇이든 다 하는데도 불구하고 할 일이 없어요 그게 하되 함이 없이 하는 거죠.
이걸 깨닫는다고 해도 어차피 자기 직업 생활하고 자식 키우고 할 건 다 말이에요 그러나 과도한 집착 없이 고집 없이 자기 생각을 믿는 것 없이 그 있는 그대로 이 삶을 삶이라는 진실을 마음껏 누려 쓰게 되는 거죠 그게 극락 아닐까요.
선법의 중요성
이미 생긴 나쁜 법을 서둘러 없애는 것 첫 번째 두 번째는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쁜 법을 서둘러 생기지 않게 하는 것 세 번째는 아직 생기지 않은 선한 법은 서둘러 생기게 하는 거네 번째는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을 물러나지 않고 머무르게 하는 거 즉 선한 법은 더 생겨나게 하고 쁜법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게 하는 거죠 하는 게 사정 정이고 정진 바람이에요 그러면 선한 법과 악한 법은 뭘까요?
악법과 선법 악법은 분별을 악법이라고 하는 거예요 분별하는 것 분별의 세계 내가 세상을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분별해서 꼭 비 분별을 쫓아가는 것 그게 나쁜 법이죠 그래서 그것은 서둘러 생기지 않게 하는게 공부란 말이죠 그 선법은 뭐겠어요 법의 가르치 그 분별은 허 분별의 허성 읽게 우는 모든 가르침들 그게 선법이란 선법의 일곱 가지를 각지고 얘기를 해요.
우리 어이 팔정도를 좀 더 확장하면 37 조도품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가운데 이제 칠각지고 있거든요 각지는 우리가 증장할 선법이란 해서요 염이라는 게 이제 사띠 알아차림 즉 자기 생각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생각이 일어났다는 그 사실을 이렇게 알아차려서 생각을 내용물을 쫓아가는게 아니라 생각을 그냥 여기서 딱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 않도록 거기서 딱 멈춰 버리는 거죠 그래서 나중에 또 공부하겠지 이제 신수심법 사념처 알아차린다 사띠 다 한다 그래서 뭐 몸과 마음과 뭐 감 느낌과 법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관하는 뭐 이걸 또이 사념처 아고 부르기도 해요.
그래서 첫 번째로는 어 무엇을 무엇을 정진하고 등장하느냐가게 아니라 분별이 일어날 때마다 그걸 알아차리는 마음 이걸 이제 정진한다 말이죠 이거에 그래서 항상 생각을 따라가기보다는 생각을 알아차리는 이 자리에이 자리로 딱 돌아와서 생각의 내용물을 따라가지 않고 그 뇌물이 일어난이 자리에서 그것을 그냥 바라보는 거예요.
그게 음각 제다 첫 번째 좋은 선법 중에 하나다 그 두 번째가 법 지라고 해서요 이렇게 선법과 어느 게 선인지 어느게 악인지 사람들은 몰라요 법 제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기복적인 기도를 하면서도 나는 신심 있는 신심 장한 사람이야 라고만 평생 믿고 사는 거예요 신심이 장한 건 맞는데 그거보다 더 높은 단계의 신심 있죠.
그래서 선에서는 심을 뭐를 심이라고 하냐면 부처님을 잘 믿고 다니고 이런 기복적 신심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깨달음을 심이라고 해요 그래서 큰 님들한테 신심이 장한 신심이 훌륭한 수자가 하나 왔습니다 이러면 깜짝 놀라서 뛰쳐나온다는 거예요 신심이 장하다는 건 깨달았다 소리니까 완전히 깨달아야 완전히 법에 대한 신심이 생기니까 그래서 이 법제는 뭐냐면 이게 바른 법인지 된 인지를 스스로 을 택할 줄 아는 지혜가 생기는 거예요.
아 내가 이제이 기복적인 아니면 방편에 치우친 이런 것들은 조금씩 이제 내가 내려놔야 되겠구나 더 바른 법을 법을 나에게서 습 되겠구나 그래서 바른 법은 자꾸 택하고 사된 법은 자꾸 이렇게 이제는 내 인생에서 이렇게 사라지도록 하는 그게 이제 법 지라고 해요.
그래서 저절로 이 공부를 하게 되면이 바른 법을 공부하게 되면 법제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삶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특법 각지가 아직 없는 사람에게는 계율을 줘 가지고 요건 좋은 거니까 지키세요 요건 나쁜 거니까 지키지 마세요 이렇게 직접 부처님이 선택해 준단 말이에요.
대신 근데 나중에 특법 제라는 지혜가 생기면 나 안에서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생기면 내가 스스로 무엇을 하고 살아도 전부 다 법을 택하는게 된단 말이죠 마치 우리가 고민 있을 때마다 법륜스님의 직문 서를 찾아가서 여쭤보면 탁 주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하다가 공부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법륜스님이 돼 버리면 나에게 법이 들어와 버리면 내가 내 스스로 무엇이든 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돼 버리잖아요.
그렇게 자기에게서 택복 각지가 구현되는 그런 삶을 사는 것 그건 이제 또 정진 바람이라고 해요 세 번째는 어 이제 정진 지라고 해요 그래서 이 정진 각지가 바로이 선한 법은 또 계속해서 시키고 또 불법은 일어나지 않도록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말하고요 또 이것 이렇게 꾸준히 이런 각지 태 각지를 정진하다 보면 정진 각지 하다 보면 희지 희지 해서 아주 기쁨 우리도 이제 마음 공부를 꾸준히 하다 보면 법문을 듣고는 정말 막 기쁜 기쁨이 막 일어나잖아요.
법에 대한 기쁨 이거는 돈을 버는 기쁨도 기쁨이지만 그것과 다른 차원의 기쁨이죠이 법이 충만 지는 기쁨은 좀 다른 차원의 기쁨이란 말이죠 그래서이 시각지능 경안 가벼워지기 시작해요 삶의 무게감이 이제 사라지기 시작해요 그 그전에는 삶과 투쟁하고 싸우면서 반드시 이래야 되고 반드시 저래야 되는 일들이 많아서 계속 삶과 싸우면서 막 뭐 힘들게 심난하게 인생을 살았다면 이제는 뭐 다 내려놓고 내맡기고 살고 이러다 보니까 그 삶이 가벼운 거예요.
저절로 이제 무게감이 사라져서 경함 각지 삶이 이제 가벼워진다 그다음 이렇게 이제 가벼워지다 보면 이제 그 정 각지고 해서 이제 선정 삼매와 같은 항상 흔들리지 않은 고요함이 고요함을 증득하는 거예요 근데 사실은 이 정 각지 고요함 선정 삼매는 것이 우리가 좌선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일어난 삼매를 느끼다가 빠져나오면은 이 선정 삼매가 사라지는이 산매도 훌륭한 매긴 한데 이거는 유의적으로 조작해서 만들어내는 삼매가 선정에서 나와 버리면 깨지는 산매 아아 그 그거는 근원적인 삼매가 아닌 거죠.
그걸 부처님은 35살에 출가하다 바로 깨달았죠 그래서 바로 버렸잖아요 우리 2500년 동안 아직도 그거 붙잡고 있잖아요 선정 삼매를 통해서 뭐 무슨 무슨 산매 체험했다 하면 막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그 부처님 그건 아니야라고 해서 중도를 설 하셨는데 그래서 진짜 삼매는 뭐 초기 불견 번 산매도 하고 여기서는 본연 산매 뭐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진짜 삼매는 법의 자리에 안 조호하는 게 진짜 산매 법은 고요해서 흔들림이 없단 말이에요 이건 오고 가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변하는 게 아니에요 늘 여하고 고요하고 언제나 선정이에요 이거는 흔들리지 않는 선정이 들어갔다 나가는 선정이 아니에요 입정 있고 출정이 따로 있는 선정이 아니에요 업종 있고 출정이 있는 건 그는 왔다 가는 매니까 생멸 법이잖아요 그건 진짜 법이 아니죠.
그래서 정각지구대 되면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로 각지고 해서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평정의 상태 무엇을 해도 흔들 나고 죽는 거에도 죽음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정 대정 평화의 상태 그 평정의 어떤 상태 이르게 된다니 이제 일곱 가지를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선법을 계속해서 닦아가는 공부 이게 이제 돼 없이 닦는 것이죠.
이게 제 정정진바라밀이란 각적 욕망 감각적으로 눈으로 자극적인 걸 보고 싶고 귀로 자극적인 좋은 소리를 더 듣고 싶고 코로 자극적인 냄새 자극적인 맛을 보고 싶고 막이 감촉이라 이런 거에 또 중독되고 생각도 막막 감각적인 욕망 이런 걸 추구하는 것을 이제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고요.
의라고 해서 된 의도를 가지는 것 그리고 남을 해치려는 마음 남들을 해치려는 마음 그리고 탐진치 삼독 이런 것들을 이제 그 법에 부처님께서 두셨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은 점차 내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또 선법은 칠각지 같은 선법은 점점 더 등장하도록 하는 것 그것을 이제 정 정진이 합니다.